<Oedipus ; sentience scape I> 

Playtime Yunjeong Hong project 2

Yunjeong hong-directing

Ryujeong hee-movement

 홍윤정 류정희

One time per week, around noon during PLAYTIME 

 기획, 연출    홍윤정

무용, 표현    류정희

전시 기간 주 1회 정오 무렵 게릴라 퍼포먼스 

관객과 함께 하는 6회의 리허설을 통해 작업을 완성


작업소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오이디푸스를 인용했다. 인물 오이디푸스는 프로이드에 의해 인간의 근본적 욕망을 심판하고 계도하기 위한 교훈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소개되고 희곡 오이디푸스는 문학적으로 신에 견주어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비극의 원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작가는 심리학적, 문학적 측면에서 소비되는 친근한 해석과 달리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근원적 매력이 발화와 그 발화가 실현되는 관계에서 유추 가능한  상징계와 실체적 관계의 틀을 제시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본다.

상징과 비극

비극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내부에 있지 않고 감각의 바깥과 상징 언어 내부의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어와 지각은 감각적 경험을 규합하여 이성적 조망을 가능하게 하며, 이러한 인간 이성과 감각적 경험의 괴리가 비극의 운명적 형태이다.

이미 발화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아버지를 죽일 자로 규정했다. 아버지 라이오스, 테베의 왕은 스스로 저지른 죄가 야기한 신탁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이를 버린다. 라이오스의 죄책감은 그가 신탁을 무시하는 대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동력으로써 오히려 예언을 실현하기 시작한다. 언어의 상징체계와 이성의 조망능력이 없는 동물은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사실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희곡은 살아온 매 순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귀결하여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그런 조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전히 행복하게 이오카스네의 남편이며 테베의 존경받는 왕, 스핑크스를 무너뜨린 현지자이다그러나 판단과 조망에 의해, 그 모든 감각적으로 정당한 사건들 사이에 연쇄적 인과 관계가 성립할 때 비로소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스핑크스의 역할 : 짐승과 인간의 차이

스핑크스는 테베로 가는 오이디푸스에게 운명적인 수수께끼를 던진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인 동물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더라면, 인간에 대한 서사적 통찰이 없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에게 죽는 사건은 될지언정, 비극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질문에 오이디푸스는 답한다. ‘그것은 인간이다.’

 

테이레시아스

바로 오늘이 그대를 낳고 그대를 죽일 것이오.”

오이디푸스

온통 수수께끼 같은 모를 소리만 하는군

테이레시아스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그대가 가장 능하지 않았던가요?”

오이디푸스

내 위대함을 보여준 바로 그 일로 나를 조롱하다니.”

테이레시아스

하지만 바로 그 재주가 그대를 파멸케 한 것이오.”1)[i]

스핑크스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반인반마 스핑크스의 눈에 비친 인간은 주체가 아니다. 이 수수께끼는 스핑크스가 동물적 감각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이다. 마치 육질을 발라내고 뼈만을 취하는 것과 같이, 언어의 단순화 과정에 수반한 폭력성은 각각의 객체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질료를 거세하고 공통점을 추출한다.

숲을 잠행하는 늑대의 오감이 인식하는 개별적 나무들과 인간이 그것을 나무라고 부를 때, 실제와 상징은 좁힐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을 선언한다. 이렇듯, 스핑크스는 짐승의 감각으로 삶과 시간성, 감각체로서 매 순간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수수께끼의 형식으로 묘사한 것이고 오이디푸스는 그 시간성과 인과성을 조망하여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평생을 은유한 이미지를 한 단어로 수렴한다.  스핑크스를 이긴 현지자적 능력으로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원망하며 찌른다. 코러스는 한탄한다.

코러스

그대는 자신의 운명과, 운명에 대한 통찰력 때문에 불행해지신 것이옵니다. 내 차라리 그대를 몰랐더라면!”[ii]

이오카스네의 행복한 남편 오이디푸스, 시비를 거는 어떤 노인을 죽였을 뿐인 오이디푸스, 사랑스러운 딸들의 아버지, 발목이 묶여 버려진 저주받은 자식의 서사가 한 풍경에서 그려질 때 비로소 각각의 순간, 행복의 경험들은 비극의 장치가 된다. 

사자

“...그리고는 벌써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라이오스 님의 이름을 부르시며, 오래전에 낳으신 아들을 생각하셨으니, 바로 이 아들로 말미암아 그분은 죽고, 어머니는 뒤에 남아 그분의 자식과 저주스런 자식들을 낳았기 때문이죠. 마님께서는 이렇듯 남편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자식을 낳게 한 이중의 혼인을 슬퍼하셨어요오이디푸스 왕께서 비명을 지르시며 뛰어 들어오시는 바람에 우리는 마님의 고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주위를 뛰어다니시던 그분께 시선을 집중했으니까요. 그분께서는 우왕좌왕하시며 우리에게 창을 달라 하셨고, 아내가, 아니 아내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을 낳은 이중의 어머니의 밭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어요….이런 재앙이 두 분에게서 터져 나왔어요. 따로따로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를 위해 한데 뭉쳐서 말예요. 그분들의 대대로 내려온 지난날의 행복은 과연 진정한 행복이었지요. 하지만 오늘은 비탄과 파멸과 죽음과 치욕과 온갖 이름의 재앙이 그분들 몫이에요.”


발화와 살붙임

 오이디푸스에서 사건을 전개시키는 축은 바로 발화다. 라이오스는 아들이 자신을 죽이리란 신탁을 받고,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에서 어머니와 살을 섞고 사람들에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보여주게 될 운명으로 장차 낳아준 아버지를 죽인다는 예언을 듣는다. 왕비 이오카스네는 스핑크스를 없앤 자에게 왕위를 주고, 그와 결혼하겠노라고 선언한다. 또 테베에 역병이 돌 때 오이디푸스가 청해 받은 예언그 땅에 오욕을 불러온 자,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벌주고 내쫓으라는 것 등이다. 이야기 속에서 선행된 발화들은 각 인물들의 두려움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육화하며 실현되고 인과를 맺는다. 이 과정은 언어 상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표상한다. 인간의 마음은 신체 외부와 언어 발화 내부의 모종의 질료적 공간에서 마치 제 3의 무엇처럼 독자적으로 꿈틀거리며, 이러한 언어와 실제 감각적 삶의 거대한 괴리가 비극을 잉태하는 것이다.

눈과 몸뚱이

 이제 발화는 모두 사건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모든 것을 알아버린 오이디푸스는 자살한 부인의 장신구로 눈을 찌른다.그런데 오이디푸스는 왜 자살하지 않고, 제 눈을 공격했을까? 그것은 그에게 비극을 조망하게 한 주체적 기관이 눈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타당한 방식은 죽음이 아니라 짐승-즉 몸뚱이가 되는 것이다. 동물은 자살하지 않는다. 결국 눈이 먼 오이디푸스는 자살할 이유가 없는 즉자적 (몸뚱이) 존재로서 비로소 비극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비극이 바로 서사임을 이해한 오이디푸스는 눈-이성-주체를 파괴함으로써 조망자로서의 주체를 부정하고 보지 못하는 존재, 더듬기만 가능한 몸뚱이로 자신을 환원시켜 이성의 죄악을 갚고자 한다.



[i]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ii] P83, 1345,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문화역서울284의 기획전 <플레이타임>은 동시대 예술의 특징인 장르 간의 융합과 예술의 시간성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다.
11월17일부터 12월 28일까지 6주 동안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문학, 디자인, 건축 등 전 장르 예술가들 55인(팀)의 독특한 퍼포먼스가 매일매일 문화역서울284 전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플레이타임 / PLAYTIME

2012년 11월 17일 ~ 12월 28일 / 오프닝 11월 16일 17시
문화역서울 284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90년대 이후 현대예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예술장르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시와 공연이 협업하고 실시간 행위들을 통한 독특한 예술체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하고, 기존의 ‘퍼포먼스’ 형식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퍼포먼스 형식의 다양화와 발전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더 부각되었고, 그 의미생산에 대한 관심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제롬 벨의 무용은 공연인가 개념미술의 연장인가, 티노 세갈의 작품은 퍼포먼스인가 조각인가…단적인 사례지만 현재 우리 예술계가 주목하는 이 두 작가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제 이러한 장르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인다. 다양한 사회활동이 예술형태로 전환되며, 조각이 행위를 유발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행위가 서사를 유도하며 오늘날 예술형태는 공간과 오브제보다는 ‘예술의 시간’은 무엇인가, 이 시간을 어떻게 연기/연출(플레이)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생산하는 예술형태는 어떤 것일까를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지금 퍼포먼스의 본질, 변화 그리고 그 형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국내에서도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하는 크고 작은 전시, 페스티벌이 소개되면서 오늘날
현대예술에서 퍼포먼스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병행하며 <플레이타임>은 보다 전격적으로 또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국내 전 장르 예술가들과 함께 이들의 실험적 제안을 6주 동안 실시간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플레이타임>은 퍼포먼스의 전형을 보여주거나 퍼포먼스에 대한 그 어떤 확고한 스테이트먼트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타임>은 ‘지금 여기’서 전형보다는 실험과정으로서 발언보다는 질문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플레이타임>은 행위, 움직임, 이야기와 시간과의 관계를 다루는 예술작품들, 또 그것이 생산하는 실험적 형태와 그 의미의 풍요성을 모두 함께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시간이다. 기록과 재현의 시간과는 사뭇 다른 재생불가능 한 시간을 전제로 하는 예술 행위들을 실험하는
<플레이타임>은 총 5개의 섹션인 <리허설: 김성원 기획>, <하기연습: 김희진 기획>, <플레이타임 아트스쿨: 안은미 기획>, <에피스테메의 대기실: 김현진 기획>, <모래극장: 김해주 기획>으로 구성된다.
<리허설>은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적 시간을 탐구한다. <리허설>은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반복가능 한 실시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전위적 행위들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하기연습>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사회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일종의 훈련과정을 보여준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하기연습>은 단련과 훈육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화되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행위들의 의미를 진단한다. <플레이타임 아트스쿨>은 국내 젊은 안무가와 무용가들이 <플레이타임> 전시공간과 작품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펼치는 ‘예술의 놀이시간’이다. 동시대 작가들의 과거 속에 잠재된 현재, 현재 속에 잠재한 미래의 시간을 다루는 <에피스테메의 대기실>은 중첩된 시간들과 근현대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실험하는 예술형태의 도래를 기다리는 실험무대가 된다. <모래극장>은 시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서사의 변주를 경험하는 장소이다. 무대도 고정 좌석도 벽도 없으며, 관객 각자의 시간 조합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로 확장되는 <모래극장>은 기존의 서사구조를 전복하는 새로운 형식의 ‘시간을 품은 서사’를 제안한다.

아울러 <플레이타임>전시는 ‘플레이타임 리더(Playtime Reader)’를 발행한다. 2000년대 이후 뉴욕의 Performa를 비롯하여 유럽 주요 미술관의 퍼포먼스 프로젝트 그리고 한국에서도 최근 페스티벌 봄, 플랫폼 등을 통해 퍼포먼스와 수행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나 그 이론적 정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타임 리더’는 퍼포먼스와 수행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다양한 입장과 제안을 자유롭게 구성한 텍스트 모음집이 될 것이다. 아울러 <플레이타임> 전시의 비주얼 아이덴티 디자인 또한 그래픽디자이너 칼 나브로의 독특한 퍼포먼스를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칼 나브로는<플레이타임> 전시를 위해 기발한 그래픽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사용해서 매 번 다른 드로잉-디자인을 제안했다.
재생불가능한 하지만 반복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칼 나브로의 <플레이타임> 디자인은 이미지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예술의 (실)시간이 일상의 (실)시간과 중첩되는 <플레이타임>에서 다채로운 일상의 이야기들이 진술 혹은 묘사가 아닌 수행적 발화로 전환되는 시간을 함께 체험하며 그것의 풍요로운 의미 생산을 기대해 본다.

김성원(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A salient feature of contemporary art since the 1990s is cooperative work between exhibition and performance, blurring boundaries of diverse art genres and enabling unique artistic experience through real-time acts. With this feature, new forms of contemporary art have been opened to experiment, and the form of pre-existing performance has been expanded. The diversity and evolvement of the performance form has been emphasized since the 2000s, and concerns for producing its meaning have increased day by day. Is Jerome Bel’s dance an extension of a performance, or conceptual art? Is Tino Seghal’s work a performance or sculpture? As seen in the cases of these two distinguished artists, to whom our art world pays attention, distinguishing the borders of genres seems meaningless. Various social activities are transformed into art forms, sculpture becomes a subject triggering actions, and actions induce narratives. Art today experiments with ‘artistic time’ rather than space and object, asking “What is ‘time of art’?”; “How can we perform and control this time?”; and “What is the art play it produces?”. In this context we need to take note of the true nature of, changes in, and forms of performance.

In Korea many exhibitions and festivals addressing performance have taken place, indicating the enhanced position of performance art. Reflecting this trend, PLAYTIME intends to showcase experimental proposals by domestic artists in all genres of art for six weeks on a real-time basis in a radical manner. PLAYTIME is not to showcase a typical form of performance or suggest any resolute statement on performance. This event is like an experimental process, rather than an archetypal ‘here and now’, like a question rather than an answer. It is time to experience works of art addressing the relation of act, movement, and narrative with time, experimental forms and abundant meaning as well on a real-time basis. PLAYTIME, experimenting with artistic acts presupposing non-renewable time, different from the time of record and representation, consists of five sections: Rehearsal (curated by Sung won Kim), Exercise of Doing (curated by Hee jin Kim), PLAYTIME Art School (curated by Eun me Ahn), The Waiting Room of Episteme (curated by Hyun jin Kim), and Theater of Sands (curated by Hae joo Kim). Rehearsal explores repetitive time without beginning or end. It refers to time for diverse narratives and avantgarde actions within non-renewable yet repetitive time to create new meaning. Exercise of Doing shows a training process to regulate patterns of our behavior including daily actions and social deeds. Executed on a real-time basis, it diagnoses the meaning of individual or social behavior moving beyond the border of training and discipline. PLAYTIME Art School is ‘time for an artistic game’ in which young domestic choreographers and dancers are involved, unrestrictedly exploiting the exhibition space and works of PLAYTIME. The Waiting Room of Episteme, addressing the present latent in the past of contemporary artists, and the future latent in the present, is a stage for experimenting with overlapped time and a new awareness of modern and contemporary culture. 

Theater of Sands is a place we can experience variations of narratives changing endlessly with time. The sand theater, without stage, seats, and walls, expanding to an infinite number of cases, dependent on the combinations of viewer time, proposes a ‘narrative bearing time’ in a new form overturning pre-existing narrative structures. In addition, PLAYTIME publishes PLAYTIME Reader, a collection of texts dealing with domestic and foreign experts’ diverse stances and proposals concerning performance and performativity. PLAYTIME’s unique visual identity has been formed by graphic designer Karl Nawrot’s distinctive performance. For the exhibition, Nawrot makes an ingenious graphic tool, and suggests different drawing-designs changing constantly by using the tool. His design for PLAYTIME, which is non-renewable yet changes through repetition, reflects images and movements on a real-time basis. Through PLAYTIME, where real artistic time overlaps real daily time, we have expectation for the production of abundant meaning, experiencing the time of multifarious daily narratives converting to performative articulation, not a mere statement or description.

 

(Sung won Kim. Culture Station Seoul 284 Artistic Director,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Professor)

 

 

  Related links 

 PLAYTIME planned by the Culture Station Seoul 284 is a performance project taking notice of fusion among genres, a feature of art in our age, and the temporality of art. Distinctive performances by 55 artists (teams) working in a wide range of genres such as art, music, dance, theater, film, literature, design, and architecture simultaneously take place in the spaces of the Culture Station Seoul 284, for six weeks, from November 17 through December 28.

문화역서울284의 기획전 <플레이타임>은 동시대 예술의 특징인 장르 간의 융합과 예술의 시간성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다.
11월17일부터 12월 28일까지 6주 동안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문학, 디자인, 건축 등 전 장르 예술가들 55인(팀)의 독특한 퍼포먼스가 매일매일 문화역서울284 전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Photos